경력관리 12계명

며칠전 트윗에 소개한 한 아티클이 있다. 12 Career Accelerators란 글인데 이 글이 서구회사 중심으로 쓰여진 글이라서 한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문화적으로 경영환경상으로 다소 다른 배경에서 나온 생각이다보니 물론 적용이 안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글로벌한 시각에서 볼 땐 구구절절 다 맞는 얘기들이다. 그래서 이 글을 한국적인 시각을 넣어서 재구성 해본다.

간단히 말해서 12가지 조언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크게 세가지 영역으로 구분이 되는데, 1) 한국인이 이미 잘하는 영역, 2) 한국인이 전혀 안되는 영역 3)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론 잘 안되는 영역이 그 구분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1)     한국인이 이미 잘하는 영역

#3. Deliver Excellence

오늘 본 어떤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죽자사자 일했더니 회사도 나도 성장”  삼성전자의 윤종용 전 회장의 강연내용을 전하는 기사다. 때론 어이가 없는 사상이라고 느끼지만 사실 한국기업의 결과지향 문화는 한국인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현격히 구분짓게 만들었다. 이 장점은 계속 지켜가야 한다고 본다. 책임감이라고 부를 수도, 업무에 대한 높은 도덕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어찌됐건 뛰어난 결과를 내는 능력은 지구상 모든 성공적인 직장인의 출발일테니까.

이 부분에 첨언을 하자면, 서구인재의 전체 풀pool 차원에서 보면 생각보다 “최고”를 향해서 전력투구하는 외국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점이 지적된다는  점이다. 한국사람처럼 “죽자사자” 일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 경험으론 국적에 상관없이 탑top 1~5%의 성공적인 직장인을 보면 최고의 결과물을 지향하는 에너지나 집중력에서 한국인이 우수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무슨 얘기냐면, 한국직장인은 전반적으로 최상의 결과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세계무대에 세워놓고나서 봤을 때 반드시 최고점에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내 경험으론 후진국 출신이건 선진국 출신이건 성공에 목마른, 능력있는 다른 국가출신의 직장인들이 세상엔 참 많다.

#8. Make the boss shine

군대식, 상명하달식 문화에서 사실 상사를 “보좌”하는 건 한국직장인의 “기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이 덕목에서 실수하는 경우는 그리 자주 목격하진 않는다. 이 항목은 사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사람들에게 더 해당되는 얘기다. 고용이라는 계약적 관계에서 본인의 일과 타인의 일, 내 실적과 상사의 실적이 별개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서구문화에선 자주 나타나는데 실상은 명령권, 경영권이 탑다운으로 구성되는 조직에선 상사의 요구, 기대에 “무조건적”으로 부응해야 하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룰이다. 이런 면에선 한국인들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내가 볼 땐 #3번의 결과지향주의와 함께 “타고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단, 부조리가 주위에 횡행하는 한국경영문화에서 잘못된 걸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이 글의 전제 자체가 정상적인 경영환경이므로)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문제는 가끔 이 능력이 과하게, 잘못되게 발현될 때다. 명령복종까진 좋은데 장님, 귀머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항목에 대한 이해의 열쇠는 가치관과 상관없이 본인이 조직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상사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하란 말이 아니라, 조직에서 상사에게 귀속되는 권한을 존중하고 그 권한을 통해서 상사가 성공적일 수 있게 도우라는 말이다.

2)     한국인이 전혀 안되는 영역

각론에 들어가기 전에 사실 12가지 덕목들 가운데 첫 5번까지의 항목들은 내가 보기에 핵심이 되는 항목들이다. 6번부터 12번까지는 일종의 선택항목이 될 수도 있지만 1번에서 5번이 없이는 사실 성공적인 경력개발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이 두번째 영역, 즉 한국인이 전혀 안되는 분야에 1~5번까지의 항목 중 3가지나 해당이 된다는 말은 (개똥이 말일 뿐입니다만…) 글로벌한 시각에서 봤을 때 한국직장인들에게 좀 더 근본적인 장애가 있다는 뜻이다 – 전혀 생소하거나 잘못된 선입견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1. Gain self awareness

내 자신의 잘 아는 게 모든 일의 출발이다. 근데 이 항목의 핵심은 객관성에 있다. 한국인들은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너무 감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경쟁을 통해 살아남다보니,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무한히 작아지거나 우쭐하거나 하는 게 한국인의 습성이다. 문제는 경쟁에 지나치게 익숙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경쟁이 낳는 다른 문제는 개인능력에 대한 잘못된 고정적인 시각이다. 무슨 말이냐면, 시험 하나를 통과하고, 특정 학교, 특정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모든 사람의 능력이 그 곳에서 고정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인식상에서. 남을 볼때도 그렇고 나를 볼때도 그렇다. 나는 이 점수로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직급의 수준이니 내 능력도 그 경쟁의 결과와 동일하다는 고정적인 시각. 업무역량이건 리더십 역량이건 사람의 능력이란 건 경험과 노력에 의해서 계속 변하는 건데 말이다. 그래서 나를 객관적으로 못 본다.

나를 알라는 이 항목의 의미는 객/관/성이다. 내가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지, 고객중심 마인드가 떨어지는지, 부하직원 개발을 잘하는지, 전략적 사고능력이 있는지, 시간관리를 잘 하는지 등등등 그 어떤 역량이건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문화적인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이게 잘 안된다. 한국인 상사들도 직원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능력이 떨어지고 기업의 인재 개발차원에서도 충성심을 강조하지 개인역량의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한국기업들은 개인역량의 평가를 쉬쉬하며 감추는 경향도 있다. 승진이나 이직이 비이성적으로 자주 이뤄지기 때문이다. 높은 분들의 “낙점”에 의한 인재관리가 횡행하다보니.

이런 한국인으로서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대게 색안경을 끼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되어있는데 그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럴려면 주변에서 “솔직한” 피드백을 내게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많은 걸 들어야 한다. 내가 우쭐하지는 않는지, 필요이상으로 평가절하를 하지는 않는지, 어떤 역량이 뒤떨어지는지 어떤 역량이 뛰어난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놓아야 한다. 이게 안되면 다른 어느것도 안된다.

#2. Develop self-confidence

1번의 이유와 비슷하게 이 자신감의 항목도 내 관점으론 한국인이 전혀 안되는 부분이다. 객관적이지 않은 자만감이 넘치는 분들은 많이 본다. 반대로 객관적이지 않은 패배주의에 빠진 분들도 많이 본다. 요점은 긍정성이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은 내 현 위치에 대한 자뻑을 하란 말이 아니라 내 능력, 내 미래, 내 가치관에 대한 긍정성을 잃지말라는 소리다.

이게 어렵다. 어려서부터 등수를 메기고 목표등수에 들지 못하면 실패, 그 등수에 들면 성공 (심지어는 부모님으로부터도) 이라는 등식에 빠져서 자라다보니 뭐 하나 잘한다 싶으면 자뻑이다. 뭐 하나 못하면 쥐구멍이다.

승진을 하고 관리자가 되고 임원이 되어서 사람들을 이끄는데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떤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어려운 얘기다. 지금 당신의 상사가 당신을 바라보는데 미래에도 지금의 자만감이나 패배주의가 지속될 것 같으면 아무도 이끌어주려고 하지 않을테니까.

#5. Speak up and gain recognition

“책임을 완수하고 기다리면 조직에서 인정해준다”는 묘한 유교적인 문화때문에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한 옹호를 너무 못한다. 요새 젊은 세대는 많이 나아졌다고 보지만 이 항목의 실천이 여전히 한국인이 잘 안되는 이유는 원리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덕목은 “내가 잘났어요”라고 나를 홍보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게 주어진 과제와 목표를 상사에게 재확인하고 그에 상응하는 실적을 냈다면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어필하라는 의미이다. 이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더 큰 경영의 그림을 볼 줄 아는 인재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

#7. Find a success mentor

요새 한국에서 매우 심하게 남용되는 단어가 멘토라는 말이다. 많은 분들이 멘토라는 타이틀로 이런저런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데, 이 아티클과 일반적인 경력관리 차원에서 멘토라고 할 때는 “같은 조직 내에서 깊고 지속적인 조언을 해주는 선배”를 지칭한다. (직속상사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지만 때론 직속상사일 수도 있다. 상호 작용의 주기가 잦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멘토의 역할을 장려하는 회사도 있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도 있는데 주로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인들이 이 항목이 잘 안되는 이유는, 역시 문화적인 환경이 큰 이유다. 학연, 지연으로 파벌을 만드는 문화, 선배들 중에서도 순번이 있고 그 선배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존경을 받아야하는 문화. 이렇다 보니 멘토를 찾기도 어렵고 멘토링을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배도 귀하다.

아티클에 정의가 잘 되어있지만 관건은 이미 성공적인 사람이어야 하고, 나의 스타일과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잠정적으로 생각하는 경력path와 비슷한 분들이 더 효과적이다. 마구잡이로 멘토를 찾으면 안된다. 주의할 다른 점은, 대게의 경우 인기있는 선배는 멘토링의 요청이 많은 후배들로부터 집중된다. 그 경쟁에서 내가 나의 slot을 잡으려면 때로는 그 멘토에게 과감하게 접근해 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이 항목이 아마 한국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항목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다보니 요새 후배들이 필요한 성공의 그림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10. Learn something new everyday

이 항목 역시 여러 배경적인 이유때문에 전혀 안된다. 문제의 출발은 개인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환경때문이다. 부족한 역량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뭘 배우겠는가. 그래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관리자 교육, 협회에서 제공되는 강의를 들어봤자 자기 것이 안되고 회사 교육예산만 축난다.

반대급부로, 자주 대책없이 파편화된 지식쌓기에 열공인 경우가 그래서 많다. 독서도 좌충우돌, 네트워킹도 우왕좌왕, 인터넷을 통한 학습도 산발적이다. 이 경우 채워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좋은데 방향성이 없으니 나의 내공으로 쌓이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온다. 관건은 내 역량의 객/관/적인 평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12. Manage stress with positive action

스트레스 관리가 잘 안되는 이유는 사회적인 배경이 크다고 본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꼭 껴안고 살거나 아니면 도피한다. 긍정적으로 관리,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 요는, 스트레스라는 사물을 죄악시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직장인에게 적당한 스트레스는 본인 성장의 촉매도 되고 업무의 집중도도 높인다. 그래서 때론 받아들이고 견뎌내야 한다. 결정적인 부분은 그 후에 오는 공백감이다. 업무를 완수해놓고 스트레스가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아티클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스트레스 관리는 바로 내 마인드 컨트롤에 있다. 스트레스가 외부적으로 오기도 하지만 스트레스관리는 전적으로 내부적인 통제에 의해서 조절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올린 포스트 참조.

3)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론 잘 안되는 영역

#4. Establish leadership credibility

쉽게 말해서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이해때문에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잘한다는 분들도 글로벌한 기준으로는 안되는 항목이다. 한국적인 환경에서 리더십이라고하면 ‘실적관리’와 ‘직원관리’를 잘 하면 끝난다고 보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더 큰 의미다. 아래사람을 키워내는 능력, 모든 직원을 매일 대면할 수 없는 큰 조직을 이끌 때 영향력에 의한 리더십, 실적의 어려움이 아닌 조직관리 차원의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 각국 각 사업부의 핵심 인사들과의 지속적인 신뢰감 유지, 방대한 조직에서 thought leadership을 관철시킨 경험 등 업무능력이 아닌 소프트한 능력이 한국인들에게는 많이 부족하다.

#6. Be an analytical problem solver

이 항목의 핵심은 “근본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어필하라는 의미이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한국인들은 잘 한다. 상명하달식의 문화에서 톱니바퀴로서는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나라는 톱니바퀴가 전체 기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그 커다란 기계가 근본적으로 더 뛰어난 효율과 실적을 내려면 어느 지점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향상되고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요구를 우리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승진을 하고 미래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풀어내본 경험이 다년간에 걸쳐 체질화된다는 얘기다. 한국적인 경영환경에서 잘 되지 않는다.

#9. Polish your interpersonal skills

글로벌한 의미에서 인간관계/대인관계 기술은 민주주의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한국경영환경에선 잘 하는 분들도 실상은 이 항목에 약점이 많다. 한국기업에선 직급에 관계없이 논리적으로 설득이 될 필요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대인관계 기술이라고 하면 그저 인간성 좋은 사람이라는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술자리에 잘 참석하고 결혼식에 자주 간다고 글로벌 시각으로 얘기하는 대인관계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강한 설득력, 깨끗한 일처리로 호감이 가는 성격,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업무접근, 내 업무/부서뿐 아니라 기업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어떤 종류의 업무도 협업이 잘되는 사람. 이런 게 대인관계의 기술이다.

#11. Become a risk taker

한국인들은 배포가 크다. 기업의 대표가 아니어도 업무를 할 때 위험을 감수하는 적극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도박적인 차원에서 그렇거나 조직에 대한 충성차원에서 그럴 때가 많다. 이 아티클에서 말하는 위험감수란 건 자신감과 연결되는 의미이다. 내가 나의 경력을 걸고 계산된 위험을 감수해보고 성공해보았는지는 미래의 리더에게 중요한 덕목이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긍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노름을 하면서 베팅을 크게 해봤다고 리더가 되진 않는다. 조폭의 두목이 할복하라해서 했다고 기업의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 리더는 위험을 계산하고 합의된 베팅을 본인의 책임귀속이라는 전제하에 여러번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조직원들과 함께 현실화 시켜본 경험이 쌓였을 때 진정한 리더가 된다.

해파리와 상어

 

업무와 관련이 있긴 했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을 등에 업고 어제 한 경제학자를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계량경제학쪽이 아니라 거시경제학과 생산성,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주로하시는 60대의 교수님이었다. 평소에 그 분이 주창하시는 신경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서 인사를 드릴 기회가 생겼기에 명함이라도 드릴 겸 만나뵈었다.

1시간 남짓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눴는데 내 첫인상은 솔직히 깐깐한 노교수님의 이미지였다. 단어선택도 상당한 훈련이 되어있으셨고 조심스러웠다. 아주 나즈막한 음성으로 본인의 이런저런 생각을 말씀하시는데 말의 속도는 빨랐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9/11이후로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 Enron과 리먼사태이후 기업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질문, 네크웤이 지배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기업은 어떤 변화를 해야하고 리더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하는 대강 그런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 머리속에는 왠지 모르게 부유하는 해파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유히 대양속에서 아무런 방향성없이 드리프팅하는 행복해보이는 해파리. 대부분의 시간에 몸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가끔 하는 몸짓으로 몇센티씩 움직이는, 이동의 주요동력이 해류와 파도라는 외부로부터 규정되는 존재. 나의 모습이자 내 주변에서 보는 대부분의 직장인의 모습.

그 생각이 든 건 아마도 그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시작하셨기 때문인 듯 싶다.

“Every second counts. As a leader, we must treat any kind of, and all kinds of moments as if we will never have it later. Time passes, and your life passes. You will never get today back. You have to ask yourself every second if you’re making a difference to the world”

어찌 들으면 cache에 가까운 멋진 얘기로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무척 그 얘기가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그 노교수의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생동안 40권이 넘는 책을 쓰셨고, 교수직 이외에 사외이사, 인큐베이터, 벤처개피털, 신문기고, 강연, NGO코칭, 국제기구 참여 등 그분의 일상을 알게되면서 그 분 말씀의 무게는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앞으로 쓰실 3권의 책에 대한 아웃라인도 설명하시고 그 일정과 쓰임새까지 치밀하게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해파리가 되어있었다. 내 운명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능력이 없는, 혹은 그 의지를 잃은, 혹은 그 이유조차 알 지 못한 채 떠다니는 행복한 바보.

그 분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Leader is a tough job.  Because you are responsible to any risks that you are causing. That’s why you ain’t gonna succeed without strong work ethic. It’s a field for the professionals. If you’re a naive armature, you’d better give up now. One second, one hour, one day counts. “

물론 이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다른 말씀을 하시면서 곁들인 얘기였다. 기업의 리더십, 기업가가 필요로하는 도덕성의 정의 등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시며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왠지 내겐 내게 하시는 소리로 들렸다.

“Capitalism is brutal. It’s a brutal world. If you want to do a right thing, you must be able to survive in this brutal world first. No one lets you win because you think you deserve.”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계속 내 머리속에 떠도는 다른 이미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확실성, 의외성, 먹이사슬의 진실이 내 삶을 규정하는 섬뜩한 바다의 모습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서 나에게 다시 물었다. 난 그 비정한 대양 속에서 내 항로대로 헤엄쳐가고 있는지. 먹이사슬 꼭대기의 상어떼 안에서도 일어나는 잔인성. 난 그 현실을 매일 직시하며 살고있는지.

생각의 힘

 비지니스를 한다는 것,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건 참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주니어 시절 필요한 생각의 힘이 있고 관리자에게 필요한 것, 임원이나 경영자에게 필요한 생각의 힘이란 게 있다. 이 생각의 힘이란 실무지식, 업계지식, 조직관리 지식과 같은 협소한 의미의 정보체득/보관의 의미를 넘어선다. 지식의 총괄성, 연계성, 시의적절성, 행동으로 발현시키는 순발력 등 좀 더 총체적인 의미다. Data가 Information이 되고 그리고 나서 Knowledge, Insight가 된다는 말들을 하지만 내가 말하는 생각의 힘은 그것보다도 더 실용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生覺이라고 말할 때는 이성적인 사고만을 뜻하기 쉽지만 한번 돌이켜보면 생각이란 말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통찰력이 조직의 변화를 이끌고, 경영직감이 신제품을 만들어내고,  판단의 힘으로 중장기 전략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을 때, 이건 지식이나 노하우를 뜻하는 건 아니다. 단순히 사람이 현명한 것과도 다르다. 실행을 해야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호기심이 머리 속에서 하나의 통찰력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경영지식의 전체성을 추구하며 주변인까지 행동으로 파급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생각의 힘은 총체적인 내공의 의미에 가깝다.  

절감을 하건 그렇지않건 의도적이건 자연발생적이건 우리는 매일, 매년 생각의 힘을 키우며 살게 된다. 그런데 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안다면 개인은 좀 더 효과적으로 조직의 리더가 될 수 있다. 비지니스를 더 잘 할 수 있다.  근데 우린 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근육과 스포츠 

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방법은 근육과 스포츠의 상관관계를 비유해보면 이해가 쉽다. 특정 스포츠를 좋아하다보면 특정 근육이 발달된다. 하지만 그 스포츠만을 많이 장시간 한다고 해서 그 특정 근육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달된다는 보장은 없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근육을 집중적으로 발달시킨다고 해도 해당 스포츠를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 스포츠를 즐기며 그 스포츠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다른 종류의 스포츠는 해당되는 근육의 요구가 다르다. 예를 들어 골프를 잘 하고싶으면 전완forearms, 상완upper arms, 어깨shoulders의 근력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공을 잘 맞추고 멀리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복부abdominal 근력도 몸의 중심을 잡는데 필요하다. 몸의 중심이 잡혀야 스윙이 예뻐진다. 반면에 수영은 엉덩이hip와 허벅지thigh의 근육이 발차기 kick 에 필수적인 요소다. 

이 비유를 비춰볼 때 우린 대게 다음과 같은 우를 범한다. 

1. 근육만사형통의 우

막연히 모든 운동을 다 잘하고 싶다는 실수인데 gym에 무작정 가서 이런저런 근육을 다 키우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뭐 하나 딱하니 잘하는 스포츠는 없는 경우이다. 근육을 이곳저곳 아무리 많이 키워도 스포츠 주특기가 없으면 안된다. 영업에 필요한 인간관계 근육, 마케팅에 필요한 창의성 근육, 매니저로서 필요한 실적관리 근육, 리더로서 필요한 팀 동기부여 근육을 적재적소에 키워야 한다. 

2. 스포츠 중독의 우

현업의 왕자가 되었지만 즉, 실무에 필요한 근육이 최고조로 발달되었지만 한 가지 근육만 발달되고 다른 근육이 발달하지 못해서 성장을 못한다. 비지니스를 한다는 것,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여러 종류의 스포츠를 2년, 5년, 10년 단위로 마스터 해나가는 과정이다. 내가 임원이 되기위해서, 다른 직종으로 옮기기 위해서 어떤 근육이 필요한지 다 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생각보다 다양한 스포츠를 해야하고 그레 상응하는 근육이 필요하다. 보스로서 필요한 17가지 근육을 참고하셔도 재미있다. 

3. 특정근육집착의 우

앞서 말했듯 장인의 길을 걷지 않는 이상, 비지니스를 더 잘하기 위해서는 조직에서 더 큰 리더가 되시 위해서는 다양한 스포츠와 그에 필요한 다양한 근육을 키워야 한다. 내 복근이 아름답다고 복근만 키워봤자 엉덩이 근육이 없으면 수영할 때 kick이 안된다. 농구를 하는데 심근 운동cardio만 하면 지구력이 높아지지만 슛 정확도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한 가지 근육에 집착하면 Supply일을 하건, R&D일을 하건, 영업을 하건,  컨설팅을 하건 말로만 때우는 경우, 인간관계로만 때우는 경우 등 많은 잘못된 사례를 본다. 잘하는 걸 아무리 잘해도 쓸데 없는 상황이 있다. 

스포츠는 이기기 위해서 한다. 비지니스도 마찬가지다. 근육은 효과적인 플레이를 위해 필수적이고 그게 승리로 이어진다. 승리와 효과적인 플레이에 필요한 근육을 따로 집중해서 개발해야 할 때도 물론 있다. 그게 생각의 힘이다. 총체적이고 이성과 감성, 실행과 반추가 동시에 되어야 생각의 힘이 는다.

슬럼프 – 답없는 세상 (3)

 이 포스트는 답없이 사는 두번째 방법에 대한 얘기다. 꾸준한 Unlearning을 통해 어느정도 “답”을 없애고 그 답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면 이젠 내 안에 새로운 것을 채워넣을 차례다.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논리다. 없애고나서 채우는.

 채우는 내용은 개인별로 그 주제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글로벌 경제, 경영에 대한 시각/경험, 리더십에 대한 시각/경험, 새로운 트렌드의 이해/적용, 새로운 기술의 이해/적용 등이 되지않나 싶다. 관건은 얼마나 Unlearning을 잘 했는가에 있다. Unlearning을 하지 않고 채우기만 하려다보면 자기만의 것이 안된다. 기름에 물을 붓는 격이다. 잘못된 답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온전한 자기 것이 되고 더 힘이 붙는다. 사실 이 “새로운” 답 (=채우기)는 우리 주변에 홍수처럼 떠다닌다. 훌륭하신 분들을 트위터와 블로그로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HBR, Economist, WSJ, Fast Company, New York Times, Business Insider등 읽을 거리가 지나치게 많은 게 오히려 현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기름이 아닌 물이 되려면 나를 먼저 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또 중요한 점이 채우는 방식이다. 아무리 우리 스스로 물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스스로의 내공을 키우는 방법을 잘못 알고 있다. 잘못된 접근방식을 먼저 살펴보면 크게 세가지 유형이다. 

1. 양으로 승부

지식과 경험을 양으로 승부하면 첫째, 방향을 못잡는다. 대게 이 경우는 자기성장의 동기부여가 충만한 상태에서 나오는 실수인데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크고 에너지가 넘치다보니 학교, 외국어, 업무지식/경험, 리더십경험/지식, 경력개발경험/지식의 범위와 깊이가 매우 넓다. 닥치는대로 해본다. 사실 그러다보면 재미가 붙어서 점점 범위가 넓어진다. 그래서 방향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차하는 때가 온다. “채워넣는” 과정에서 이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하는 조언은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의욕이 효과를 짓누른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 큰 틀에 맞지않는 경험과 지식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채우기”의 뼈대를 세우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채우기의 “양”은 골조가 튼튼해지고 나면 나중에 훨씬 더 빨리 붙는다. 대부분의 경우 경력 초반의 분들이나 경력 후반으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재교육”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이 오류를 자주 겪는다. 

2. 내공쌓기의 단절

내게 없는 것들을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꽉 차있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처한 조직의 위치에서 사실 더 이상의 채우기가 필요치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내 내공쌓기가 멈춰지는 오류에 해당한다. 미운 서른 셋의 경우가 이 경우다. 그 다음에 오는 게 사십사춘기이다. 이 경우는 사실 본인이 눈치를 못챌 때가 더 많다. 왜냐면 조직에서, 자기의 업무에서 성공적이다보니 성공이 “채우기”를 가리기 때문이다. 

이 오류를 겪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역설적이게도 “뒤돌아보기”이다. 미운 서른셋이건 사십사춘기이건 그 자리까지 다다른 이유는 그 이전에 나의 이미 내공이 차여있었기 때문임을 우린 자주 잊는다. 미운 서른 셋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조직에서 어느정도 결과물을 내고 일하는 방법이 손에 익은 그 타이밍은 사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신입사원시절을 지나면서 배우고 경험한, 그러니까 7년정도의 “채우기”의 결과물이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린 나의 “현재 실력”과 “채우기의 결과”를 혼동한다. 설사 이 두가지를 혼동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의 “채우기”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 분들에게 단언할 수 있는 점은 미래가 장미빛이 아닐 거란 점이다. 채우기가 단절되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3. 채우다가 끝난다

나의 내공을 쌓는, 잘못된 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나만의 답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양으로 승부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뼈대와 방향성을 잘 잡고, 동시에 멈추지도 않으면서 꾸준히 시간을 보내는데도 자기 성장의 결과가 없는 경우다. 이런 분들의 증상은 대게 이렇다. 만나서 얘기해보고 생각을 들어보면 그 깊이와 넓이, 생각의 명료함과 힘이 느껴진다. 남들과 차별화되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근데 정작 답을 없애고 난 자리는 잘못된 답에 휩쌓여있던 자리와 별반 다름이 없다. 말 그대로 채우다가 끝나는 경우다. 

이 경우는 대게 두 가지 오류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쓰지 않는 경우다. 잔뜩 채워놓고 그러니까 새로운 경험, 알맞는 새로운 지식을 잔뜩 쌓았는데 밖으로 충분히 내뿜지 않는 경우다. 채운 걸 조직에 보여주고 헌납해야 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조직에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내 그릇에 빈 자리가 다시 생기고 또 다른 걸 채울 수 있다. 적절히 내공을 쓸 줄 알아야 한다. 둘째의 오류는 채운 걸 적재적소에 쓰는대도 정체하는 경우다. 그 이유는 내 그릇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큰 그릇으로 나를 바꾸면 채우기의 크기도 달라진다. 중간관리자가 채워야하는 내공과 중역이 채워야 하는 내공이 다른데 자신이 중간관리자 그릇에 머물러 있다면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다. 

Bath Tub metaphor 

올바른 채우기는 Bath Tub 비유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위의 세가지 대표적인 오류도, “물에 기름 붓기”도 이 원리에 비추어보면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잘 설명된다. Bath tub metaphor는 원래 기업전략상 경쟁우위에 대한 고찰(Asset Stocks and Sustainability of Competitive Advantage, Dierickx & Cool, 1989)에 나오는 개념이다. 

먼저 간단히 이 개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욕조Bath Tub에 물이 있을 때 “채워진 물” Stocks은 어떤 한 시점을 기준으로 물의 높이에 의해 표시된다. 이 채워진 물은 욕조로 들어가는 물과 개수구로 빠져나가는 물의 “흐름” Flows이 시간경과에 따라 축적된 결과다. Stock이 Flow의 개념과 다른 것은 Stock이 기업 경쟁우위에 대한 더 정확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R&D의 경우를 기업 경쟁우위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한 시점에서 욕조에 차있는 물은 Stock 그러니까 그 기업의 노하우 즉, 경쟁우위가 되고 R&D 투자금액은 개수구로 흘러나가는 out-flow가 된다. 우리는 흔히 이 out-flow를 경쟁우위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시간경과에 따라 그 욕조 안에 채워있는 물의 량이 지속가능한sustainable 경쟁우위 competitive advantage인 것이다. 그래서 이 R&D의 경우 경쟁우위는 그 물(=경쟁우위)를 사용하면 할수록 줄어든다. 기업은 그래서 장시간에 걸친 물의 전체 양을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개수구로 빠져나가는 그러니까, 경쟁력을 사용함으로써 현실 비지니스에 쓰여지는 물의 양은 순간적인 조절이 필요하지만 그 욕조에 물을 채우는 행위in-flow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Bath Tub 비유는 내가 좋아하는 경쟁우위에 대한 탁월한 견해인데, 이 시각은 어렵지 않게 우리의 “채우기” 행위에 적용된다. 이 이론을 이용해서 앞서 언급한 잘못된 채우기가 아닌 올바른 채우기를 생각해보자. 

물과 기름 – unlearning은 채우기의 기초 단계

우리 욕조에 존재하는 기름(잘못된 답)을 빼내야 한다. 개수구로 빠지건 바가지로 퍼내건 잘 찾아서없애야 한다. 조심스럽게 폭탄해체반처럼 해야하는 이유는 자칫 잘못하면 물과 같이 버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혹은 욕조가 텅 비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욕조가 비어버리면 내 시장가치가 없어진다. 

넘쳐흐르는 욕조

욕조가 어느정도 채워져 있고, 욕조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물을 계속 끼얹는 분들이 있다. 빠져나가는 사용량도 얼마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그 추가분의 물은 넘쳐서 버려진다. 자기 것이 안된단 뜻이다. 그래서 자기 욕조의 크기를 알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욕조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모자란 욕조 물

개수구는 열려있는데 물을 채우지 않으면 곧 욕조가 빈다. 계속해서 새로운 시각, 새로운 경험을 부어주지 않으면, 어떤 측면에선 나의 경쟁우위가 현실화되면서 조직에서 인정받으니까 물 채우기를 게을리하면, 곧 미운서른셋과 사십사춘기가 다가온다는 명징한 징조다. 개수구로 물이 거의 다 빠져나갈 때 생기는 쏴-아 하는 잡음을 들을 때 붓기 시작하면 이미 늦었다. 

개수구 leakage의 크기

채워진 물은 쓰지 않으면 썩는다. 개수구가 너무 작아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현실에 부딪히며 쌓아온 나만의 내공을 계속 내뱉어야 한다. 아무리 욕조의 물이 높이 차여있어도 결과물 – 업무가 되건 리더십이 되건 – 을 내보내고 현실화시키고 그 경쟁우위를 통해 내가 성장해야 한다. 

더 큰 욕조로

이렇게 unlearning과 물 채우기가 선순환을 만들기 시작하면 내 욕조의 크기를 키울 차례다. 하지만 이 두가지 방법 – 답없이 사는 방법 – 을 터득하신 분이라면 욕조 하나쯤 큰 걸로 갈아타는 건 어렵지 않다고 본다. 이쯤 되면 슬럼프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슬럼프 – 답없는 세상 (2)

 

<Unlearning>

 답없이 사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두 가지 일을 하면된다. 그 중 첫째로 할 일은 답을 없애는 일이다. 더 정확하게는 답을 해체하는 일이다. 난 이 과정을 unlearning process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단어의 선택이 중요하다. 해체의 의미는 demolition보다는 re-engineering, disassembly의 뜻으로 한 말이다. Unlearning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부정 denial이라는 단어와의 변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잘못된 답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게 아니라 그 답들이 내 인생에 어떤 작용을 해왔고 지금 내 생각 중에 어떤 측면이 잘못되었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수십년동안 살아온 (잘못된) 가치체계를 하루아침에 뒤집는 일은 불가능하다. 특정한 사건이 생겨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가치체계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설사 몇달만에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을 굳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다짐은 몇일 가지 못한다. 나만의 새로운 답에 내 몸이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사실 이 블로그의 많은 글이 unlearning의 단초를 던지는 내용이다. 행복의 의미, 경력의 의미, 연봉의 의미,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의미, 글로벌 비지니의 의미, 승진의 의미, 리더십의 의미, 자기개발의 의미 등 개똥이 블로그가 그동안 쓴 얘기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지난 1년동안 한 얘기들은 아마도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의 1%조차 안된다. 그래서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 나 역시 토종한국인으로서 계속 짊어지고 살아갈 숙제들이다. 어찌보면 아주 단순하고 실용적인 삶의 지혜조차도 자주 우리는 무릎을 치며 깨닫는다. 잘못된 답들 때문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다음날 다시 까맣게 그 깨달음을 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잘못된) 가치관에서 수십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주의할 점: 성급한 공사>

 가끔 unlearning과정을 성급하게 하시는 분들을 본다. 내 충고는 다음의 그림이다. 내력벽인 줄 모르고 잘못 건드리면 건물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그 결과는 더 참담하다. 무너진 벽만 다시 올리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집 전체를 허물어야할 수도 있다. 그러기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든다. 그래서 종종 무너진 집 안에서 계속 사시는 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준비없이 무작정 이직을 하거나, 직종변환을 하는 경우다. 내가 짓눌린 잘못된 답에 대한 반항심이라고 할까. 급작스런 유학의 경우도 그렇다. 용기를 갖는 것과 지혜로운 게 일치하지 않을 때 오랫동안 불행해질 수 있다. 그래서 폭탄해체팀처럼 우리의 얽힌 답을 하나씩 조심해서 풀어야 한다. 선입견 폭탄(나이, 학벌, 인종, 성별)도 해체해야 하고 버릇폭탄(업무방식, 직원관리방식, 자기개발)도 해체해야 한다. 그러면서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뭘 잘할 수 있고 하고싶은 건 무엇인지. 이 답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않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유아교육 vs 경력관리>

 이 폭탄해체의 과정을 유아교육의 관점에서 비유할 수도 있다.

 우린 5살짜리 유치원생에게 한글과 영어와 한자와 덧뺄셈을 가르친다. 잘못된 교육의 답이다. 적어도 7살까지는 공부가 왜 필요하고 즐기는 대상이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나서 스스로 공부를 하게 도와줘야 한다. 근데 우린 5살짜리부터 숙제와 씨름을 시킨다. 우리 부모님 세대야 모르셔서 그랬다 치더라도 뭔가 잘못된 걸 아는 우리는 이 잘못된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외와 선행학습이 한번 시작되면 취업시험까지 그 족쇄를 못벗어난다. 그 짓을 우린 우리 아이들에게 하고있다. 두려우니까. (잘못된) 답으로부터 멀어지면 불안하니까.

 근데 그 아이들이 커서 온전한 사회인이 될까. 생각하는 방법과 힘을 기르지 않고 얄팍한 시험기술을 터득한 아이들이 행복을 만드는 방법은 커녕 인생의 복잡다난한 국면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부모로서 내 접근방식이 고쳐질 수는 있을까.

 우리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외국어공부, 자격시험, 승진시험, 이직, 연봉인상이라는 (잘못된) 답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무엇을 해왔을까? 내가 여태껏 리더로서의 힘과 깊이를 쌓아왔는가? 비지니스맨으로서의 통찰력과 역량의 넓이를 축적해 왔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 10년후, 20년후의 계획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더 크고 온전한 리더로서.

 이런 우를 범하는 이유는 우린 감정적인 답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내 아이라고하면, 내 경력이라고 하면 먼저 감정적이 된다. 눈앞에 보이는 학교시험, 승진/연봉에 눈이 먼다. 점수가 안나오면 열받고, 승진이 안되면 열받는다. 몇주, 몇달을 그렇게 열받아 지낸다. 반대로 시험점수 한번 잘 나오고 승진 한번하면 몇달 몇년을 우쭐대서 살아간다. 객관적으로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막연한 기대감과 실망 사이에서 살아간다. 계획이 설 리 없다.

 이런 접근이 단번에 바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래서 막연하고 감정적인 태도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바꾼다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참을성이 필요하고 덕을 쌓는 과정이다. 폭탄해체처럼.

<Foundation problems>

 이렇게 장시간에 걸쳐서 하지만 꾸준히 다각도로 답을 해체하며 없애다 보면 점차 본질적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이걸 나는 Foundation problem 이라고 부른다.

 단순한 미장의 문제고 아니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옆집에서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건물내외에 균열이 있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가 foundation problems이다. 건축물에서 대부분 정의되는 foundation problems은 약한 지반, 토양의 물빠짐 문제, 하수관의 누수 등이다. 이런 근본 문제를 알아내고 고쳐주면 균열을 멈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균열을 덮고 나서 문제가 다시 불거지지 않는다.  

  “잘못된 답” 때문에 사실 우리 대부분은 크고 작은 균열에 둘러쌓여 산다. 때론 덕지덕지 균열을 덮기도 하지만 이유를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런데 Unlearning을 계속 하다보면 그 근본문제를 파악하게 된다. 요는, 평상시에는 우리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 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의심을 해보고 이리저리 고쳐보고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근본문제”의 예는 이런 것들이다. 지속적인 배움의 동기를 상실한 사람, 엘리트로 자란 배경 때문에 조직을 크게 포용하지 못하고 직원들을 IQ로 판단하는 리더, 인간관계상의 충돌을 싫어해 조직원간의 문제를 피하는 매니저, 피해의식에서 못 벗어나 업무에 집중않고 회사의 문제점 드러내기가 더 편한 사람, 온실의 화초처럼 1류기업에서 너무 오래 지낸 배경 때문에 맨땅에 헤딩을 감수하지 못하는 사람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잘 고쳐지지 않는, 다른 피상적인 균열들의 뿌리가 되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갖고 있다. (결국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법)  Foundation problems를 옳게 대하는 자세는 본인의 근본문제를 온전한 무감정으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근본문제에 대한 깨달음은 사실 한국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Unlearning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C-suite 경영진이나 중역들은 리더십 코치가 있다. 6개월짜리 프로그램을 하면 적게는 2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 가까운 코칭 expense가 든다. 그 코칭시간동안 잃는 경영진, 중역들의 시간 loss는 별개로. 그만큼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고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깨닫는 건 더 어렵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직딩들에세는 이런 코칭이란 럭셔리가 없다. (만일 있다면 적극 활용하시길) 하지만 어렵지 않게 우린 흉내낼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에 솔직한 피드백을 구하는 일이다. 뻔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콧대높은 경영진, 중역들 가운데에서도 코칭의 효과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이유가 열린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얘기가 아니라 코칭전문회사의 얘기다)

 본인이 열린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감정적으로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엔 멘토를 찾아야 한다. 직접적인 멘토건 간접적인 멘토건 찾아나서서 메달려야 한다. 그러면 나만의 근본문제를 파악하고 고치고 있는지 판단이 좀 된다.

 이렇게 해서 Foundation problems를 파악하고 그 뿌리의 문제들을 고쳤다면 1단계, 즉 답을 없애는 데 성공한 것이다. 느끼셨겠지만 절대적 성공, 완성이란 건 사실 없다.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일 뿐이다.

 어쨌든 “답”을 없앴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체력저하로 답없는 세상에서 사는 두번째 방법은 다음에..

슬럼프 – 답없는 세상 (1)

봄이다. 날씨가 온순해지며 세상이 내게 좀 덜 공격적인 것 같고, 꽃이 피면서 주변의 비주얼도 풍부해지니 내 삶도 더 그래야 할 것 같다. 바람이 더 이상 차갑지 않으니 나도 내게 따듯해져야할 것 같다. 그러면서 얼었던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간다. 이게 몇주 지속되면서 생기는 게 슬럼프. 며칠 전 한 트친께서 남기신 말, 요새 슬럼프인지 그닥 열심히하고 싶지 않다는 트윗을 보며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왜 슬럼프라는 게 생기는걸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방법이란 게 딱히 있기는 한걸까 하는.

총선이다. 여느 선거철과 다름없이 한국은 열병이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저질 정치를 보고있자면 답답하다. 국가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인 게 분명하다. 새나라당인가 하는 집권당은 안하무인인데 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신기하다. 야당은 이번에 연합을 하면서 일진보 했지만 치졸하고 더럽고 유치한 미디어와 집권당의 난타전에 얽혀 새로운 비전을 못 보인다. 답답하다.

한국계 이민자가 월드뱅크의 총장이 됐고 다른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 300대 교수의 리스트에 포함됐다. 언론마다 대서특필이다. 기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만은 아니다. 이런 뉴스가 시청율을 올리고 이슈가 되서 그렇다. 반면에 한국계 이민자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사건도 큰 뉴스다. 왜 한국인이 자꾸 문제를 만드는지를 얘기한다. 이민자 2세대, 3세대의 정신적 압박에 대한 분석을 한다. 이해가 도무지 안된다. 한국은 미국에 환장한 나라처럼 보인다. 남의 나라 뉴스가 왜 한국의 미디어에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는지.

이 세가지의 얘기들 – 슬럼프, 정치, 한국인정체성 – 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그건 우리가 항상 “답”을 찾는 민족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상당히 이율배반적이게도, “답”은 없다. 세상엔 답이 없음을 깨달으면 조금이나마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와진다. 슬럼프를 없앨 수 있다.

변질된 유교문화가 군사문화로 자리잡은 한국에선 교육의 핵심이 한가지 답을 찾는 꼴이 되버렸다. 한국에서 교육이란 것은 답을 알고 외우는 것과 동일어다. 일본식 교육의 영향을 받은 사지선다형의 문제유형은 그 예의 일부분일 뿐이다. 시험test지상주의를 벗어나자고 여러가지 새로운 시험방법을 시도한다. 논리력을 측정하려고 논술도 본다. 근데 거기에도 답이 있다. 논술학원에 가면 답을 가르쳐준다. 기출시험을 분석하고 시험제출자의 의도를 분석하고 논리적 글을 쓰는 방식을 배워서 점수를 올리는 답을 준다. 우리는 그렇게 답이 항상 있다고 굳게 믿는다. 영어가 중요해지면 토익이건 뭐건 거기에도 좋은 점수를 만드는 답이 있듯이. 요는, 그 답을 모르면 우리는 초조해 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는 그 답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말은 결국 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세상에는 단 한가지의 답만이 있다”고 믿게 한다는 뜻이다. 생각의 깊이와 너비를 넓히는 교육이 아니다. 생각의 힘과 지구력을 키우는 교육이 아니다. 왜? 후진산업국가에서 절실했던 건 표준화된 기술인력의 단시간 제조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험test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고 그 시험 방식은 한 가지 답만 찾는 게 빠르고 쉽다.

이 문제는 확장된다. 답이 단순한 논리적 수리적 답solution을 벗어나서 가치價値까지 포괄해버린다.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공산주의와 대항하고 군사문화에서 재벌을 키워 국가경제를 만든 우리는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좋은 교육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답이라고 세뇌되었다. 왜냐면 그게 “옳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장유유서와 상명복종의 문화에서 “옳은 것”이란 단 하나의 가치측면만을 갖게 되어있다. 다양성과 개연성이 용납될 큰 필요도 없고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이러면서 “답”은 절대적인 가치가 된다. (거기에 요새는 돈이라는 더 강력한 답까지 우리의 가치관을 하나의 잣대로 정의해준다. 어찌보면 세상살기 참 편하다. 답이 늘 우리에게 주어지니까)

아뭏든 이 절대적 가치는 이제 감정적이 된다. 왜?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유교문화에서 옳음과 그름은 사물인식의 기본출발이다. 이젠 “답”은 경제적 효용과는 관련없는 개념이 된다. 존재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비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를 만큼 경제적 곤란에 처하지 않는한은 “옳음”이 경제적 효용이라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짓누른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사람들을 보면 환호한다. 그게 답이니까. 존경해야 하니까. 대단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니까. 그게 한국인으로서의 단 하나의 답이니까. 그래서 동시에 범죄자가 된 한국계 이민자를 보면 미안하다. 왜 남의 나라에 가서 우리의 “옳은” 답을 통째로 뒤엎는지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얘기하고 나누고 싶어진다. “완전한 답을 아는 사람이 있고, 엇비슷한 답 근처에도 못간 사람이 있다”고. (이런 감정적인 얘기들은 미디어에서 좋아하는 뉴스가 된다)

정치란 이념의 집합체다. 모든 것이 옳고 그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나서 경제적 효용이 그 내용이 된다. 새나라당이건 야당이건 마찬가지다. 왜 우리나라의 정치가 후진적이냐면 그 두 집단 모두 “옳음”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때문이다. 이건 내 존재의 이유가 되기때문에 논리적 정합성의 문제 이전에 항상 짚고넘어갈 수 밖에 없다. 서로 신념이 다를 때, 출구는 없다.

슬럼프가 오는 이유도 결국 답 때문이다. 태어나서 나이 30정도가 될 때까지 받은 가정, 학교, 사회의 교육이 지정pre-set해 놓은 일련의 답들이 나의 인생을 판정judge하고, 그 답들(연봉, 승진, 직업, 직책, 회사, 가정의 구성, 가족에서의 위치, 친구사이에서의 위치 등등)은 단순한 답을 넘어서 내 인생가치가 되버린다. 이 압박을 버티며 사는 우리의 인생은 힘들다. 바쁘게 뛰다가 한숨 돌리는 찰나에 슬럼프는 그렇게 온다.

그래서 슬럼프는 허상이다. 이 허상은 답을 권하는 사회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답이 없다면? 슬럼프도 없다.

답없이 사는 방법은 2회에서…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

 설이다. 한국에 들어가서 떡국먹는 호사를 못누린다는 아쉬움에 한국에 있는 지인 몇분과 안부인사겸 통화를 했다. 친분이 오랫동안 쌓인 지인들은 사실 목소리 톤만 들어도 대강 정황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걱정이 많은 사람, 스트레스가 큰 사람, 아무 생각없는 사람. 전반적으로 느낀 점은 꼭 서양인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다른 아시아인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들은 대게 인생에 대한 불만이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사는 게 빡빡하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자기관리의 측면, 사회문화적인 환경 때문도 크다.

 행복이란 외국어를 배우자고 얼마전에 포스트하긴 했지만 반어적으로 행복한 분들이 어디 있으랴. 실적에 쫒기고 24/7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점수와 승진과 시험으로 인격이 구분되는 문화이다 보니.

 그 생각들 중에 공통적인 생각 하나는 “결과”와 “과정”에 대한 비교다. 부조리도 여전히 많고, 회사조직이란 공간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의 개인에 대한 평가란 것도 그렇다보니 우린 그런 말을 자주 하는 것 같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 말 뒤에 숨은 뜻은 대부분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냐면 소위 회사에서 좋아하는 “결과”는 정당하고 제대로된 “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가정 때문이다. 꼼수를 쓰고, 포장만 좋고, 동료를 밟고, 정치적인 술수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또 한편으론 좋은 “과정”이란 내가 무언가를 배웠고, 동료와의 의리를 지켰고, 일을 즐기면서 했다는 뜻이 된다. 결론적으로 무슨 말이냐면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게 부조리한 방법을 통해 얻은 소득보다 중요하단 말이다. 왜? 우리는 도덕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거짓말하면 안되고 규칙을 지켜야하고 정정당당히 살라고 선생님이 부모님이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그렇다.

 근데 여기에 큰 모순이 있다. 뭔가 뒤바뀌었다.

 첫번째는 비지니스에서 “결과”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다. 불법이 아니고 비도덕적이지 않다면 사실 비지니스는 결과가 중요하다. 그게 현실이다. 물론 그 경계선 주변에서 서성이고 자주 들락거리는 재벌도 많고 개인도 많다. 근데 우린 그 부조리의 비도덕성 때문에 비지니스의 본성을 싸잡아서 부정적인 걸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면 안된다. 결과 즉, 수익을 내려고 비지니스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게 진리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부조리한 결과 때문에 우린 결과 알레르기가 있다.

 두번째는, 오늘 사실 하고싶은 얘기인데, 과정에 대한 이중적인 우리 모습이다.

도덕성이 우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감고 있다보니 (잘못된) 결과라는 개념의 반대급부의 과정이라는 개념을 우린 개인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과정이 그리 중요하다면 내가 반문하고 싶은 말은 본인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본인의 성장을 위해서 무슨 과정을 보내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오히려 우린 개인의 발전을 생각할 때 “결과” 집착증이 심하다. 내가 더 나은 직장인, 더 나은 매니저, 더 나은 리더임을 정의하라고 하면 우린 주로 “결과” 어휘를 들이댄다. 어떤 회사 출신이고, 어느 직급까지 올라갔고, 어떤 석사학위가 있고, 어떤 프로젝트를 했다는 게 중요하다. “과정”으로서 내가 어떤 역량을 키우고있는지는 거의 말을 못한다. 말해보라고 하면 대게가 외국어, 자격증, 대학원 뿐이다.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고 있는지, 시간관리능력을 키우고 있는지, 포용력을 키우고 있는지, 일의 성과를 측정하는 버릇을 키우고 있는지, 의사결정의 질과 신속성을 키우는 훈련은 하는지, 주변사람들에게 동기부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지, 주변부서와의 협업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연구하는지, 팀원들 충돌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지, 전략능력을 키우고 있는지, 글로벌 비지니스 지식을 익히는지, 직원응대를 공정히하는 연습을 하는지, 면접하고 좋은 사람을 고르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향상하려는 노력을 하는지, 회사전반의 프로세스를 이용하는 습관을 키우는지,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고 그 지식을 사용하려 노력하는지…

 이 “과정”에 대해선 답이 없다. 생각해본 적도 솔직히 별로 없다.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인데.

 왜 그럴까? 매우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개인의 평가를 늘 “결과”의 잣대를 쓰는 문화이기 때문에 그렇다. 수학점수가 중요하지 논리력이 중요하지 않다. 한자어휘의 양이 중요하지 한자문맥과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 대학교 이름이 중요하지 뭘 배웠는지 중요하지 않다. 연봉이 중요하지 직무가 중요하지 않다. 토익 점수가 중요하지 영어를 쓸줄아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승진이 중요하지 무슨 능력이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 국어점수가 중요하지 읽고 쓰는 습관이 중요하지 않다. MBA학위가 중요하지 고급경영이론이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우린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문화에서 수십년을 살았기 때문에 내 자신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쓴다. 이 정도 학벌에 이정도 경력에 이정도 직급이면…하면서. 과연 그럴까? 과연 우린 그렇게 중시하는 “과정”을 내 자신에게 적용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2주동안의 휴가를 보내고 새해 첫날 사무실에 오니 솔직히 업무도 잘 안잡히고 몸상태도 아직 휴가의 연장선에 있어서 짧은 글 하나로 머리를 세척하고 싶어졌다. 새해도 되고 했으니 다짐까진 아니어도 내 자신이나 주변분들에게 꼭 얘기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고 해서.

 내겐 2011년은 진정으로 의미가 깊은 해였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그 공부의 양과 깊이가 터무니 없이 모자라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찌해야하는 지 단서가 어렴풋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 공부가 시작된 건 어느정도는 우연이었다. 현업실무에 너무 쫒겨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생각의 정리, 글쓰기의 연습이 절실해졌고 정확히 365일 전 오늘, 난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블로그도 시작했다. 그 땐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한 걸음 뒤로 나와 무언가 다른 작은 걸 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저 그게 맞는 일 같아서.

 근데 이미 세상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연결은 점점 촘촘해져 간다. 그 연결된 세상 속에서의 내 작은 목소리, 내 스스로에 대한 목소리가 남들에게 발견되고 소통되었다. (요새 많은 컬럼에서 말하듯 실상 소통이니 디지털이니 하는 단어가 이미 식상하다. 죽은 표현이다. 그런 단어들로 이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쨋든) 그 촘촘해져가는 연결된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들의 지식, 이야기, 목소리를 내게 전해준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나만의 연결고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게 지난 365일동안 내게 일어난 일이다. 그러면서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걸 실감했다.

 변하는 세상의 충격은 강했다. 세상이 변하는데 흥분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정말 수 세기에 한번 오는 세상의 변화다. 이 변화는 글로벌하고 빠르고 예측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흥분된다.

 많은 사람들이 흥분되어 있다. 아직도. 당연하다. 독재자들이 무너지고 기존 미디어의 꼼수가 안먹히고 지식의 공유는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우리 피부에 스며들어 있다. 물론 이 변화가 싫은 사람도 있고 인정하기 싫은 사람도 있고 아직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들에겐 이미 힘이 없으니까. 그만큼 이 변화의 여파는 근원적이다.

 근데 이 변화의 힘으로 인해서 흥분된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이 있다. 너무 흥분되어 있어서. 적어도 지난 365일동안 내가 느낀 점 중의 하나가 이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을 주의하며 앞으로의 삼백여일을 또 보내야겠단 생각이 든다. 왜냐면 그게 맞는 것 같아서.

 난 요새 일주일에 한번 이상 내 트위터 팔로워 숫자와 블로그의 페이지 뷰 숫자를 본다. 가끔 klout 점수도 보고 favstar도 본다. 그러면서 어떤 메시지가 인기를 끄는지 감이 온다. 어떤 정보를 사람들이 원하는지 알 것 같다. 어떤 파워트위터러, 파워블로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 알 것도 같다. 그러면서 내 트윗, 내 포스트를 거기에 맞게 변형하는 나를 본다. 여기까진 그리 잘못된 건 아니다. 예술하는 것도 아닌데 소통할 수 있는 내용이 혼자만의 궤변보다는 나으니까.

 잘못은 주객이 바뀌는 경우다. 흥분된 우리는 “연결”을 목적으로 삼는 우를 범하기 쉽다. “연결”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변화는 실로 그 경계를 한정짓기 어려울 만큼 폭발하고 있는데, 이 information over-flow를 나만의 체계로 만들지 못하는 우리는 겉모습을 쫒는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때론 외면한다. 깊이가 치고 들어오면 피한다. 피상적인 게 편하다. 그래서 때론 할 말이 없는데 기사 한줄 인용해서 내 타임라인을 채운다. 리트윗으로 타임라인을 채운다. 사진 몇장으로 블로깅을 하고 그걸로 올라간 내 포스트 뷰 숫자에 순간적으로 행복해 한다. IT업계 종사자도 아니면서 각종 앱 리뷰를 보고 UX디자인을 논한다.

 얼핏보면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볼땐 크나큰 문제다. 왜? 그렇게 피상적인 연결쫒기 때문에 나의 내공을 쌓을 시간을 잃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내공이다. 내공은 연결된 세상으로부터 얻은 지식과 정보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때론 전혀 연개성이 없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면 Librarian 이 세상 최고의 현인이어야하지 않은가) 많은 경우 나의 내공은 나만의 시간을 투자해야 얻어진다. 정보와 지식을 내 경험을 통해 내면화하고 소화시키지 않으면 내공이 아니다. 근데 실력은 내공의 싸움이지 명함의 싸움이 아니다.

 트위터나 여타 소셜네트웤를 통해 얻는 지식은 파편적일 수 밖에 없다. 그 파편들을 모으고 퍼즐을 맞추고 나만의 그림을 완성하려면 그 소셜네트웤을 “먹는” 시간의 몇십 곱절을 “되씹”고 “소화”시켜야 한다. 크기에 관계없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야 한다. 그리고 생각을 해야한다. 정리를 해야한다. 그걸 말하는 분들이 별로 없다. 그걸 말해도 우리들 귀엔 잘 안들어 온다. 너무 흥분된 상태라.

 연결되기 시작한 세상의 초기상태에선 잊는 게 생기는 게 당연하다. 사람은 표현의 동물이고 연결의 동물이다. 정치적 동물이어서 내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렇지 못하던 본능이 폭발해서 그렇다. 하지만 내 “소셜네트웤 이용”, 그리고 “연결된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이 두가지는 균형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점을 새해에는 좀 더 잘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나의 내공을 쌓기 위해서.

아시아, 한국인, 리더쉽

엊그제 콘페리의 “Leadership transformation powers growth for firms in Asia”라는 화이트 페이퍼 한가지 링크를 트윗했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신 것 같아서 오늘은 그 내용의 일부를 번역합니다. 제가 볼때 참으로 적확한 내용이고 공감이 되지만 사실 좀 추상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이 화이트페이퍼 역시 다른 화이트페이퍼와 대동소이하게 콘페리 컨설팅의 영업의 일환이기도 해서 HR쪽에 안게신 분들은 연관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번역까지 해놓고 보니 더 지루한 소리들로 들립니다.

하지만 제가 현업에서, 몇 아시아 국가에서 일해본 경험으로 이 내용이 상당히 공감이 됩니다. 요점은 아시아의 경제위상이 높아졌고 그에 상응하는 아시아인재가 필요하지만 현대로선 그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제 관심사는 이 수요부족 속에서 한국인 탤런트가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기에) 그래서 현재와 앞으로 십수년이 상당히 중요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 화이트페이퍼 한개가 모든걸 설명할 순 없습니다. 또한 논거가 다국적회사에 국한되어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관심사 – 한국인재의 글로벌 리더쉽 – 에서 볼 때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에 현격한 저질 번역임을 알면서도 뻔뻔히 포스트 하기로 했습니다. 아뭏든… 

The economic shift towardsAsiacreated new demands for corporate leaders. Cultivating a sustainable pipepline of learning agile talent that can drive innovation and operate in a global, multicultural environment is crucial to success in this region. Only by making talent development the top agenda will companies be able to reap the enormous opportunities. 

아시아로의 경제이동은 기업리더에 대한 수요를 일으켰다. (아시아) 지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문화,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내고 (기업을) 운영할 줄 아는 ‘민첩하게 배울 줄 아는’ 탤런트의 지속적인 공급을 육성해야 한다.

 For decades, Asia served as the workshop for the world and exports drove growth; that wasAsia1.0. The nature and role ofAsia’s economies has now dramatically changed.Asia’s consumers now drive growth, a role that has become pivotal as the rest of the world enters a second slowdown in the wake of the global financial crisis. Asia has entered a new growth model which Korn/Ferry calls Asia 2.0, and it’s marked by several fundamental shifts: companies are now focusing squarely onAsia’s increasingly powerful consumers, particularly as Western consumers pare spending. R&D investment is also moving toAsiaas companies strive to create and tailor products for the region’s diverse consumer base. With that comes a workforce shift: companies need creative talent who can drive that innovation.

 수십년동안, 아시아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수출에 의한 성장을 이뤘다. 이걸 아시아 1.0 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의 경제적 역할은 현격히 변화했다. 아시아 소비자들이 이젠 성장을 이끈다. 이 역할은 세계 금융위기 위협에 의한 비아시아 지역의 2차 (경기) 침체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이다. 콘페리가 아시아 2.0이라고 명명하는 신성장모델로 아시아가 진입한 것이다. 이 모델은 몇가지 근본적인 변화로 대변된다 : 서구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는 가운데 기업들은 아시아 소비자들의 날로 증가하는 지대한 영향력에 완벽한 촛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들은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소비자층을 위한 (아시아) 제품을 만들어내려하고 그래서 R&D 투자 역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Asia’s new growth model requires a new breed of leaders. Today, they need the skills to craft strategies to generate new growth in underserved markets; they need to use disruptive innovation to create entirely new categories of products and services; and they must put together high-performance teams that can operate in a global, multicultural environment.

 아시아의 신성장모델은 새로운 세대의 리더를 요구한다. 오늘날, 이 새로운 세대의 리더들은 (수요가) 충족되지 못한 (아시아) 시장들에서 신성장을 창출해낼 전략수립 역량이 필요하다. 이들은 전혀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파괴적 혁신을 이용해야 한다. 그들은 글로벌하고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운영할 수 있는 high-performance팀을 조직해야만 한다.

 “We need more leaders who can manage with vision and purpose, and who can step up, take some risks and help define the future will look like. That’s an area where there still are some gaps”

 “우리는 비젼과 Purpose (취지,목적)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을 자처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미래의 모습을 정의할 수 있는 리더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아직도 우리에겐 (기준 대비) 차이가 있다.”

 That has a profound impact on the kinds of leaders and employees companies need. Yesterday’s general manager needed technical and functional talent to ensure the business ran smoothly. Today’s GM has to be innovative and able to find new ways to distinguish the brand in the minds of local consumers.

 이점은 기업이 필요로하는 리더와 종업원의 유형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과거의 사장(GM)이 사업을 매끄럽게 운영하기 위해 기술적, 업무적인 인재상을 필요로 했다면, 오늘날의 사장은 (아시아) 현지시장의 마인드 속에서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줄 알고, 혁신적이어야만 한다.

 That kind of talent is in short supply. InChina, just one percent of executives and one percent of managers are ready to succeed inAsia2.0, according to a 2010 Korn/Ferry study. InIndia, just eight percent of both executives and managers have these skills. The gap stretches across the entire spectrum, form leaders to front line staff. A resounding 97 percent of participants at the Leadership Transformation conference said they are facing a talent shortage; 50 percent said it was ‘reasonably likely’ that key talent would leave their organization over the next six months.

 그런 탤런트가 수요에 못미치고 있다. 2010년 콘페리의 조사결과, 중국의 경우 1퍼센트만이 임원급 및 관리자급에서 아시아 2.0의 시대에 성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인도의 경우는 8퍼센트만이 역량을 가지고 있다. <리더쉽 변혁>이라는 컨퍼런스에서 97퍼센트라는 의미심장한 숫자의 컨퍼런스 참여자들이 탤런트 공급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50퍼센트는 (자신의 기업) 핵심인재가 향후 6개월 안에 퇴사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응답했다.

 Learning agile individuals are flexible, adaptable, and resourceful; they excel at absorbing information from their experiences and using that to navigate unfamiliar situations. People with this core skill are best positioned to deal with the complexities of making and marketing products for consumers inAsia’s diverse, fragmented and fast-growing economies.

 ‘민첩하게 배울 줄 아는’ 인재들은 유연하고, 융통성, 변통성이 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정보를 흡수하는데 뛰어나며, 그렇게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헤쳐나간다. 이 핵심역량을 보유한 사람들은 다양성, 세분화, 고성장경제로 대변되는 아시아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팔기 위한 복잡성을 관리하는 데 최적의 인재들이다.

 Research has shown that 10 percent of development comes through training, 20 percent through coaching, and 70 percent from experience.

 연구결과에 의하면, (경영 리더쉽 역량의) 개발은 70%가 경험으로부터, 20%가 코칭, 10%가 교육으로부터 기인함을 알 수 있다.

 A core part of talent management is leadership development – a task that is particularly challenging inAsia. Now, more than ever, companies need to make sure they have a pipeline of local leaders who can connect with this critical market – and are committed to the company. This is not easy to manage: many multinationals continue to be plagued by the ongoing economic turmoil in Europe and theU.S.and companies need a good game plan to keep leaders motivated these volatile times.

 인재관리의 핵심은 리더쉽 개발이다. 이 과제는 아시아에서 각별히 어려운 주제다. 현시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기업들은 이 핵심적인 시장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리고 회사에 더 충성심을 지닌, 현지 인재의 공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은 쉽지않은 과제이다: 많은 다국적 회사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계속되는 경제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고 이 기업들은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리더들이 동기부여가 지속되도록 관리하는 실행계획이 필요하다.

어떤 외국어 공부하십니까?

 글로벌 시대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잘하면 그만큼 기회가 많다. 정말 그렇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면서, 외국에서 일하면서 사실임을 매일 느낀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해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영어 홍역이다. 영어 교육시장은 아직도 성장 중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런 말을 많이들 한다. 외국어는 환경이라고. 아무리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외우고 책을 읽고 시험을 봐도 늘지 않는 외국어. 하지만 5살짜리 외국아이는 그 외국어를 잘하는 걸 보면 분명히 IQ나 노력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그저 매일매일 쓰고 익숙해지는 길 밖엔 없다고.

 맞는 말이다. 각종 영어시험점수가 높은 사람들 중에 말을 못하거나, 일상대화는 하더라도 비지니스 대화 – 프리젠테이션, 전화통화, 협상영어, 설득영어, 스피치, 공식석상의 인사치레 대화 등 – 이 안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영어를 주 언어로 업무를 하고 산지 수년이 지났지만 갈길이 멀다. 매일 배운다. 내 설득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각종 행사용 스피치도 연습하고 한다. 아직까지 가장 어려운 게 formal한 비지니스 디너같은 장소에서의 영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화가 많지만 소위 교양있어 보여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내 경우는 새발의 피다. 주변에서 본 많은 토종한국분들 중 외국어를 우아하고 멋지게 쓰시는 분들을 종종 본다. 그러분들을 보면 정말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근데 그 이면에는 대부분 “습관”이 존재한다. 배우는 습관. 매일매일 표현 한 줄을 배우고 외우고, 책을 읽고, 사전을 달고 살거나, 새로운 경지의 외국어를 하려고 자신을 압박하고 실험하는, 습관들이 있다.

 근데 행복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우린 행복해지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자꾸 방법론을 들먹이고 각종 잣대를 써서 행복이란 외계성을 취득하려는 것 같다. 내 비유는 이렇다.

 우린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건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성공하는 게 뭔지는 많이 배웠다. 성공의 잣대는 대부분 돈과 명예다. 그걸 부지부식간에 행복과 동일시 한다. 그래서 학벌, 자산, 직위 등의 것들이 잣대가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문법, 어법, 어휘를 배운다. 좋은 학교, 좋은 전공이라는 문법을 배운다. 좋은 직장, 대기업이라는 어법을 배운다. 승진, 큰 연봉이라는 어휘를 사전을 뜯어먹듯 꾸역꾸역 외운다. 왜?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우리 모두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래서 그 잣대들로 행복을 가늠한다. 근데 그건 행복하곤 별 상관이 없는 기초문법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행복이란 게 우리에겐 외국어처럼 생소하다.

 그래서 귀농을 하거나 이민을 가시는 분들도 있다. 환경이 바뀌니 주변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행복을 모국어처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이란 외국어가 몸에 베인다. 매일매일을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쓰다 보니 처음엔 힘들지만 내 몸과 마음이 그렇게 따라간다. 문법을 배우고 어휘를 외우는 게 아니다. 그저 나를 그 상황 속으로 던져 넣는 거다. 

문제는 모든 분들이 성공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때론 도피성으로 그 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현지에서 통하는 행복외국어를 체득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 마치 외국유학을 다녀와서도 외국어 한마디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막상 큰 마음을 먹고 환경을 바꿨지만 나 스스로를 진정으로 그 환경 속으로 밀어던지지 않는다. 때로는 지속적인 소득활동이 여의치 않을 경우, 벽에 부딪히고 본국, 서울, 모국어로 돌아온다.

 그래서 대게의 경우를 보면 이 행복이란 외국어를 체화하기가 쉽지 않다. 근데 다른 외국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방법은 하나 – 나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매일, 매순간 의도적으로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고 써보고 한단계 높은 차원의 외국어를 구사하려고 에너지를 쏟지 않으면 잘 할 수가 없다. 사실 개별 방법론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우리가 모두 알고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다음은 기초문법들이다. 

  • 상황이 허락하는 한 집에 일찍 퇴근하자. 그걸 죄악시하지 말자. 회사일을 잊는 동안 즐거운 기분을 연습하자.
  • 취미를 갖자. 가족과 함께 하는 거면 더 좋다. 직종에 따라서 반대편 뇌를 쓸 수 있는 취미를 찾아보자.
  • 업무의 성과를 냈을 때의 즐거움을 표현하자.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고만 생각치 말고 스스로를 응원하자.

 중급 어법으론 이런게 있지 않을까. 

  • 조직에서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잘못된 사람들이 있으면 내 감정을 떼내서 냉정하게 대하자. 회사는 일하고 월급받는 곳이지 친구만들고 제2의 가족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 업무역량과 리더쉽역량을 균형있게 키우자. 주위를 돌아보고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자. 그 배움을 즐거워하자.
  • 네트워킹을 하자. 현재 회사, 현재 업종을 벗어나서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다보면 너무나 많은 걸 배운다. 그게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결국은 더 나은 직장인이 된다. 그 기회들을 찾아나서자.

 고급 어휘로는 이런 것도 있을 것 같다. 

  • 은퇴계획을 포함한 재정계획을 짜자. 내가 40, 50, 60이 됐을 때 어떤 규모의 경제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고 그 준비를 하자.
  • 재정계획에 맞춰서 경력개발 계획을 짜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경력은 나만이 안다. 예전 포스트 참조.
  • 안식년 휴가 계획을 짜자. 휴가 자체도 즐겁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자.

 고급 교양 외국어로는 이런 것도 있을 수 있다. 

  • 30년짜리 “내 인생” 프로젝트를 하자. 직업과 관련된 것이건 혹은 관련이 없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자. 그게 30년 후에 책을 발간하는 걸 수도 있고, 사회봉사활동이 될수도 있고, 전원주택을 짓는 걸수도 있다. 요지는 내 인생, 내 이름 석자를 걸만큼 의미있는 무언가를 찾고 실현하자. 내가 세상을 뜨고도 오랫동안 누군가에 의해 기억에 남을만한 무엇을.

 이렇듯 행복이란 외국어를 익히는 방식은 수도없이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행복외국어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알기론 그 방면에도 전문가, 그러니까 외국어 강사분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학원을 오래 다닌다고 외국어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심지어 외국에 살아도 외국어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왜냐면 외국어는 내 입, 뇌, 언어습관을 매일, 매순간, 그러나 긴 안목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늘 제자리니까. 행복외국어도 그렇다. 내 습관, 행동, 생각을 매일, 매순간, 하지만 긴 안목을 갖고 바꿔야 한다. 불행히도 많은 수의 한국인들에게 행복이란 외국어와도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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